
William Elliot Griffis의 "Corea: The Hermit Nation"은 내가 다독하는 책 중 하나이다. 19세기 말에 쓰인 이 책은 당시 서양인의 눈에 비친 조선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책은 1882년에 처음 출판되었다. 책이 쓰인 배경과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면, 책의 내용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Griffis는 미국인 선교자이자 교육자로, 1843년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다. 1870년부터 1874년까지 일본에서 교편을 잡았는데, 이 경험이 그의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그리피스는 실제로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다. 그의 한국에 대한 지식은 주로 일본에서의 경험과 2차 자료에 기반하고 있다.
이 책이 쓰인 19세기 후반은 서구 열강들이 아시아에 진출하던 시기이다.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조선이 일본에 개항한 이후, 서구 열강들의 조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Griffis의 책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서양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조선을 소개하는 역할을 했다.
당시 서구사회에서는 아시아를 오리엔탈리즘에 기반하여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다. Edward Wadie Said가 후에 비판한 이 관점은 동양을 신비롭고 열등한 '타자'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Griffis의 책도 이러한 시대적 한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는 조선을 '은둔의 나라'로 묘사하며, 때로는 조선의 문화와 제도를 '미개하다'고 평가한다.
한편 이 책이 쓰일 당시, 조선은 내부적으로도 큰 변화를 겪고 있었다. 개화와 수구 세력 간의 갈등, 동학농민운동의 태동 등 사회적 변혁기였다. 그러나 Griffis의 책에서는 이러한 내부의 역동성이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Griffis가 주로 참고한 자료들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일본에서 만난 조선인 망명객들의 증언, 중국과 일본의 역사서, 그리고 서양 선교사들의 보고서 등을 활용했다. 이 중 일부, 특히 일본 자료들은 조선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Griffis의 서술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따라서 비판적 독해가 필요하다.
이러한 배경들을 고려하면, 이 책을 단순히 19세기 말 조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기록한 자료로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당시 서구인의 시각, 일본을 통해 왜곡된 조선관, 그리고 제국주의 시대의 동양에 대한 인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로 봐야 할 것이다.
"Corea: The Hermit Nation"은 여러 차례 개정판이 나왔다. 1897년과 1907년의 개정판에서는 조선의 변화하는 상황을 반영하려 노력했다.

"The Hermit Nation"이라는 표현은 당시 조선의 쇄국정책이 반영된 결과이다. Griffis는 서문에서 조선이 수세기 동안 세계와의 교류를 차단하고 외부 영향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하려 했다고 설명한다. 이는 페리 제독의 방문 이전 일본의 쇄국정책보다도 더 엄격하다고 한다. 현재의 한국을 생각하면, 불과 150년 사이의 변혁이 크다는 것을 느낀다.
책의 내용 중 한국의 역사, 문화, 관습에 대한 서술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이었다. 예를 들어, Griffis는 조선의 교육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 목적이 젊은이들의 마음을 발달시키거나 올바른 추론을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정부 시험(과거)에 합격하게 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반면 학문에 대한 열정을 높이 평가했는데, 서민들 사이에서도 교육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현대 한국의 교육열과 입시 중심 교육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내용은 많이 달라졌지만, 교육에 대한 열정과 사회적 성공을 위한 도구로써의 교육이라는 인식은 유효하다.
Griffis는 조선이 사실상 섬과 같다고 말하며, 바다와 만주(당시 봉금지역이었으므로), 러시아의 산들이 북쪽 경계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해안선이 많은 섬들로 보호받고 있다고 덧붙인다. 이런 관찰은 한반도의 지리적 위치가 가지는 전략적 중요성을 암시한다. 그에 따른 외교적 과제는 과거나 현재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는 강대국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고 있다.
이 책에서의 조선 역사 서술은 상당히 포괄적이나, 부정확한 부분들이 있다. Griffis는 단군 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등 신화와 역사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았다. 삼국시대를 다룰 때는 중국 사서의 기록에 과도하게 의존하여 고구려의 독자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고려시대에 대해서는 몽골의 침입과 그 영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어, 고려의 문화적 성취나 정치적 독립성을 상대적으로 경시한다.
Griffis는 조선의 관료제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데, 관리들이 부패하고 억압적이며 비효율적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주요 업무가 백성들을 착취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19세기 후반 조선의 관료제는 실제로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삼정의 문란, 특히 환곡제의 폐단으로 인한 농민들의 고통은 심각했으며, 결국 1894년 고부민란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조선의 관료제가 전적으로 부정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의 관료제는 신분에 관계없이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는 선진적인 제도였다. 또한 삼사와 같은 기관을 통해 권력을 견제하고 균형을 유지하려 했으며, 경연이나 상소 제도를 통해 왕권을 견제하고 정책을 비판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했다. 이러한 제도들은 서양의 근대적 관료제와는 다르지만, 나름의 체계와 합리성을 갖춘 것이었다. 따라서 모든 관리가 부패하고 억압적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 Griffis의 평가는 조선의 복잡한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일반화된 측면이 있다. 그가 조선에서 실제를 경험하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의 관점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책은 나로 하여금 타국에 대해 경험해보지 않은 것들을, 언론과 같은 2차 자료로부터 수용할 때 얼마나 주의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한 문화나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과 경험이 필요하며, 2차 자료에만 의존할 경우 편견이 생길 수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Griffis의 "Corea: The Hermit Nation"은 19세기 말 국제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조선에 대한 서술에서는 당시 세계 질서의 변화와 문화 간 인식의 복잡성이 드러난다. 저자의 상세한 관찰과 긍정적 평가들은 또한 단순한 편견을 넘어서려는 노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문화적 차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할 것인지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