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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멜버른, 호주

국제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 해외 출장을 떠났다.
연구실에 들어오고 반 년 정도의 시간 동안 두 번의 국제 학회에 참석했지만, 일종의 운인 것인지 모두 한국에서 개최됐었다. 한 번은 서울, 한 번은 대구였다. 두 번 모두 여행의 측면에서도 좋은 경험이었다. 서울에 꽤 살았음에도 가본 적 없던 서울의 장소들을 가볼 수 있었고, 생애 처음 대구에 방문하며 그곳으로 흩어졌던 옛 동지들을 재회하는 기회가 되었다. 차치하고도 학회에서 보는 사람들은 선망이자 자극이 되었다. 아마 내가 더 가치있는 연구를 하고자 욕심내는 데 기여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 멜버른에서 열린 학회는 두 가지 측면 모두에서 기대되는 일이었다.
먼저 아시아를 벗어나는 게 처음이었다. 해외여행에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 이상의 이점을 느끼지 않았기도 하고, 더군다나 호주까지 갈 때에는 교통비, 숙박비도 많이 들 뿐더러 물가도 비싸기 때문에 호주를 여행지로 고려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금전적인 걱정을 덜고 자의로는 가지 않을 곳까지 간다는 것이 기대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참석한 학회가 내가 속한 연구실의 도메인에서 가장 큰 규모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트렌드를 살펴보고 싶었다. 세밀한 영역에 대해서, 내가 다루고 있는 것이 이 학계에서 어떤 트렌드를 가지는지 알고 싶었다. 이것은 문헌으로만 보는 것보다 현장의 악센트가 가지는 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출장 기간 8일 중 비행기에서 보내는 시간들과 학회 기간인 6일을 제외하면 오로지 여행에 쓸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특히 첫 날은 경유지인 싱가포르의 창이공항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창이공항은 공항 내부에도 구경할 거리가 많다고 하는데, 경유하기 위해 들렸다 보니 공항의 명소인 쥬얼까지는 나가지 않았다. 언젠가 싱가포르도 여행으로 방문하고 싶다.
 

창이 공항. 터미널 내부에 식물이 많고 조경이 잘 되어 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파는 곳이 별로 없어서 수소문 끝에 찾았다.

 
기내식을 세 번 먹은 끝에야 멜버른에 도착했다. 입국심사가 끝나자마자 해외 경험이 많이 있는 연구실 사람들이 바로 우버를 잡아서 함께 타고 호텔로 이동했다. 비행이 길었다 보니 얼른 짐을 풀고 정박하고 싶었다.
이 때가 10월 말이었으니 한국은 가을이고 멜버른은 봄이었다. 두 곳의 기온과 일교차가 비슷하여 한국에서 입던 옷들을 그대로 챙겨가도 괜찮았다. 다만 멜버른은 날씨가 맑았다가도 몇 시간 안에 흐려지거나 비가 오는 등 날씨 변동이 커서 우산은 항상 가지고 다녔다.
 

멜버른 공항. 오른쪽 아래 보이는 Zone C가 우버를 대기하는 구역이다.
우버 기사님이 포토 스팟이라고 알려주어서 열심히 찍었다.

 
한 주 동안 지낸 숙소는 멜버른의 CBD에 있었다. CBD에는 옛스러운 건물들이 이곳저곳에 많아서 따로 코스를 짜지 않아도 둘러볼 곳이 많다.
 

호텔 앞. 바로 보이는 건물은 Flinders Station이다.

 
첫 날 산책을 하며 이 곳 신호등의 점멸방식에 당황한 적이 있다. 보행자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어서 길을 건너는 중 금방 적색점멸로 바뀌었다. 나는 몇 번을 그렇게 짧은 신호에 쫓겨 호다닥 다녔던 반면 많은 사람들이 적색점멸 신호에도 느긋하게 건너고 있었다. 그래서 적색점멸 중에는 눈치껏 차를 피해서 건너는 거구나 생각했었다. 그러던 중 어딘가에서 신호등 아래 붙은 안내문구를 봤는데, 이 곳에서 적색점멸은 이미 횡단보도에 진입한 사람만 계속 건너고 아직 진입하지 않은 사람은 다음 신호에 건너라는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을 엄밀하게 지키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대게 우리의 녹색점멸과 같이 받아들이는 듯 싶다.
 

(좌) 어느 골목길. 차와 사람이 부대끼지 않아서 걷기 좋았다. (우) 시청. Flinders Station도 그렇고 이런 건물들에는 시계가 있어서 좋다.

 
멜버른에서의 첫 날은 학회 전이었기 때문에 여유 있게 보냈다. 약간의 산책 이후 도서관에서 코딩을 했다. 논문도 끝내놓고 왔기 때문에 멜버른까지 와서 해야할 일은 딱히 없었지만, 이것은 일종의 관례다. 현지 개발자의 기분을 내보는 것이다.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 바깥은 올드해 보이는데 내부는 현대적이었다.
저녁으로 먹은 스테이크, 랍스타, 등.

 
저녁으로는 연구실 사람들이 미리 예약한 스테이크 집에서 식사를 했다. 음식에는 조예가 없는 데다가 영어로 된 메뉴판은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편하게 코스 요리로 시켰다. 때문에 내가 무엇을 먹는지 모르고 주는 대로 먹었다. 이 날 이후로도 연구실 사람들이 미리 알아본 음식점들에 가는 일이 많았다. 사전에 조사한 그들의 부지런함에 고마웠다.
 
이 곳에서 먹은 음식들은 대체로 짜고 기름졌다. 입은 즐거웠지만 소화하기는 힘들었다. 멜버른에 있는 내내 약한 배탈이 있었다.
 

갈매기가 참 깨끗하다. 조형물인 줄 알았다.
(좌) 야라강변을 따라 학회장 가는 길. (우) 학회장.

 
학회 첫 날은 튜토리얼과 워크숍이 있는 날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튜토리얼은 보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고, 또 내가 공부해온 것들이 공통감각에 부합하는 것인지 확신이 없기 때문에 튜토리얼도 챙겨 보고자 아침 일찍 나섰다. 이 날까지는 학회장에도 사람이 많지 않아서 coffee break 때에도 다른 사람들과 조금은 대화를 해보았다. 이 후 날들에는 사람이 정말 많아서 포스터를 구경하는 것 외에는 네트워킹을 하지 않았다. 북적이는 것을 싫어해서 군중 사이로 진입하고 싶지 않았다. 딱히 할 얘기가 없기도 하고. 저번 학회 때 노력하며 대화를 했던 적이 있는데, 사우디아라비아의 어떤 교수님과 자리하며 내 연구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서 애를 먹었었다. 아직은 내가 다른 연구자와 교류하기에는 준비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소극적임에도 우연한 일로 사람들과 대화하게 될 때 매번 고마운 인사이트를 얻는다.
 

(좌) 트램. 학회 등록할 때 받은 myki 카드로 유용하게 타고 다녔다. (우) 햄버거. 보기보다 비싸다. 그래도 멜버른 물가를 생각하면 일반적인 햄버거 가격이다.
Welcome function으로 와인을 주었다. 샤르도네 같은데 맛은 별로였다.
Serai kitchen. 필리핀 음식점이라고 한다.

 
멜버른에는 맑은 날이 귀하다. 하루가 기본적으로 흐리다가 몇 시간 반짝 맑아진다. 그래서 날이 맑으면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멜버른의 맑은 날.
Yarra bar. 맥주 종류가 다양해서 여러 가지를 비교해보며 먹었다. 제일 왼쪽 음식에는 캥거루 소시지가 들어있었다.

 
셋째 날에는 운이 좋게도 종일 날씨가 좋았다. 이 날 학회 일정을 마치고 야라 강 수상에 있는 바에 갔다. 야경 보는 것을 좋아한다면 이곳은 추천하는 곳이다. 맥주와 음식을 먹으며 대화하다 보니 멋진 야경을 볼 수 있었다.
 

주경에서 야경까지.

 
다음 날에는 학회에 온 타학교 교수님과 학생들과 식사를 함께 했다. 자리를 함께 한 학생들의 얘기를 듣다 보니 대학원 생활의 짧은 기간 동안 고민하고 이룬 것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는 논문 한 편 쓰는 것도 큰 과업이었기 때문에 주눅이 조금 들었지만 이 또한 성장하는 과정이노라 생각했다. 그들은 한국인이 하는 발표는 챙겨 듣는다고 했다. 아직은 저의를 모르겠지만 효용이 있을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이 날 만난 한국인들은 이전에 타 국제 학회에서도 뵌 적이 있다. 불특정하게 만난 외국인들보다는 기억에 남는 편인데, 이것이 한국인들 간의 교류가 가지는 유리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Melbourne magic이라는, 메뉴판에는 없는 커피.
Grazeland의 푸드코트.

 
다섯째 날 저녁에 Spotswood의 Grazeland에서 banquet이 있었다. 이곳은 CBD와 떨어진 곳에 있어서 전철을 타고 가야 했다. 역에서 내려서 걸어가는 동안 사방이 공장이어서 도착하기 직전까지도 이곳이 맞는지 헷갈렸었다. 연구실의 다른 아이는 배를 타고 왔다고 하는데, CBD 인근에서 출발하는 페리가 있다는 것 같다. Grazeland 바로 앞에 선착장이 있어서 그곳에서 내린 것 같다. 배편이 있는 줄 알았다면 타고 올 걸 싶었다.
 

(좌) Queen Victoria Market. (우) 캥거루 가죽. 진짜여서 놀랐다.

 
Queen Victoria Market에서 지인들의 선물을 샀다. 사진으로는 담지 않았지만 멋진 기념품들이 많다. 다만 이곳은 오후 3시에 많은 점포가 영업을 종료하기 때문에 일찍 가야 한다. 이곳에서 선물을 산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같은 기념품들을 공항 면세점에서는 훨씬 비싸게 팔았다.
마켓 근처에는 한식집들이 많이 있다. 김치찌개가 끌려서 먹었는데 한국의 그것과 비슷하면서도 덜 매웠다. 매운 것을 잘 못 먹어서 오히려 좋았다.
 

김치찌개와 김치전.

 
이 날을 마지막으로 다음 날에는 싱가포르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왔다. 7일 동안 멜버른에서 지내며 낯설고 익숙해지는 기분을 모두 느꼈다. 그래도 아쉬운 기분이 들지는 않는다. 언젠가 해외에 갈 기회가 또 있다면, 멜버른에 다시 오기보다는 다양한 도시를 경험해 보고 싶다.
 

멜버른 골목들.
호주와 한국.

 


 
학회에서 본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연구에 진심이라고 느꼈다. 나는 특히 기조 연설보다는 구두 발표를 열심히 들었는데, 그들의 발표에서 어디에 강세가 붙는지 보고, 그들이 이전에 쓴 논문들을 찾아보면 고민의 흐름을 짐작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구두 발표의 기회를 얻기까지 해왔을 노력을 떠올려보면, 덜 노력하고 논문을 붙이고 싶다는 나의 욕심이 헛되었다는 깨우침을 준다. 그리고 아직 확신할 게 없는 나의 지식에서 발표자들과 일치하는 전제를 발견할 때 내가 가는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느낀다. 무엇보다 학회에 있는 동안 얼른 연구실에 돌아가서 해보고 싶은 것들이 생겼다는 것이 하나의 수확이다.